심심할 때 읽으려고 유명한 산악 서적을 스무권쯤 샀던게 삼년은 된 듯 싶다. 이제야 그 책들을 대충이나마 다 읽어 간략한 독후감을 써둔다. 아울러 너무 블로깅에 태만해졌다는 누군가의 질타를 이걸로 일단 면피해 보려한다. 먼저 내게 가장 도움이 많이 된 책은 Boardman Tasker Omnibus 였다. 이 책은 산악 문학상의 시초가 된 Joe Tasker 와 Peter Boardman 이 쓴 네권의 책을 한 권에 묶은 것으로 작은 활자체에다 10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를 자랑해 베개로 적합하다. 처음 Joe Tasker 가 쓴 Savage Arena 를 읽을 때만 해도 그럭저럭 진도가 나가다 Peter Boardman 이 쓴 The Shining Mountain 부터는 책을 집으면 이내 잠들어 숙면..
국내에서 대부분의 경우 싱글 로프를 사용하지만 경우에 따라 더블 로프나 트윈 로프가 유용할 때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파트너와 둘이서 빠른 진행이 필요한 등반에서 더블(또는 트윈)로프 시스템이 무척 편리했다. 그러나 오버행 구간에서 8mm 로프 하나에만 의존해 추락하기는 무서워 두 로프를 모두 클립한다. 로프 구입시 적혀있는 스펙에는 fall rating, impact force, dynamic/static elongation 등의 정보가 적혀있는데 이것에 따르면 더블로프로 사용했을 때 xx 번 추락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베알 사에서 출시된 8.5mm opera 로프의 경우 싱글로 사용할 경우 5회, 더블로 사용할 경우 18회 추락을 보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더블로프..
새해를 맞은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한량 된지는 어언 백일이고. 쉴새 없이 돌아다니느라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이라도 잠시 인생 점검을 해야겠다. 거창한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내 뜻대로 쓰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10년 전부터 다른 삶을 꿈꿔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다소 막연한 꿈이었고 지금은 현실이라는 차이일 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생각만 했던 것들을 온몸으로 부딪혀 보자. 이 여정에서 무엇이 나를 기다린다 해도 기꺼이 맞이할 수 있을 듯 싶다. 온전히 내가 택한 길이니.
즐겨 보는 온라인 잡지중에 rock and ice 에서 최근 접했던 기사들. 에디터 입장에서 산악잡지에 어떤 글을 실으면 많이 읽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도 있었고 파타고니아에서 한 알파인 등반가가 유명을 달리한 소식도 있었고 역시 파타고니아에서 토미와 알렉스는 피츠로이 산군의 봉우리 7개를 관통하는 Fitz Traverse 를 해냈다. 서울의 한 귀퉁이에서 지구 반대편 군상들의 소식을 듣고 있다니. 그 중 나의 고민들과 정확히 맞닿은 이야기도 보인다. 오늘 읽었던 써니의 인터뷰 (rock and ice_Sonnie Trotter) 에서는 써니가 어릴적 스쿼미시에서 등반 파트너 찾기 힘들던 시절 줄없이 프리솔로 등반했던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얘기하고 있다. 등반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시간되고 마음 맞는..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참 많지만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은 그중의 일부이고 내가 현실적으로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다. 그것도 열심히 노력할 때나 가능하겠지만. 그런 사람중 하나다. Michael Ybarra 라는 사람. 처음 그 사람의 el Capitan 등정기를 읽으며 '뭐 이런 사람이 다있나' 싶었다. 38세에 처음 암벽등반을 접했고, 44세엔 엘캡을 처음 오르는데 NIAD (Nose in a day) 를 시도했단다. 25시간이 걸려 Nose in almost a day 가 되었지만. 그렇게 흥미를 느껴 구글링해보니 다음 기사는 2012년 같은해 뉴욕타임즈에 나온 부고. 매카시즘을 파헤친 "Washington gone crazy" 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사람이더군. 글..
하도 많이들 쓰길래 좀 궁금해졌다. 그렇게 재밌나? 일단 가입 하고 이리저리 둘러봤는데 아직 내 취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하루 지났을 뿐이니. 쓰기 어렵지는 않은데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되면 아주 복잡할듯. 서로 피드백을 활발히 주고 받는 시스템이다 보니 아무래도 사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광장의 느낌이다. 여기에 스마트폰까지 결합되면 확실히 늘 다른이들과 연결된 느낌이 들테지. 과연 계속 쓰게 될지 한달은 두고 봐야겠다. 요즈음들어 눈에 밟히는 단어: sustainable. 지속가능한. 예전에는 attractive (라고 쓰고 addictive라고 읽는) 요소에 쉽게 혹해 한참씩 빠져 살았는데 이제는 한 발 물러서 그 매력적인 요소가 sustainable 한지 고민한다. 내가 좋아서 했다고 해도 다른..
2011.02.25-26 올해는 볼더링 페스티벌이 이틀간 진행됐다. 이틀을 체력적으로 버틸수 있을까 걱정하며 컨디션 조절을 하려 했는데 금요일밤에 밤새 기침을 했더니 토요일 아침엔 목소리가 쉬어있다. 완벽한 타이밍이군. 이틀 내내 몸이 힘드니 만사가 귀찮고 문제는 까다로와 의욕도 안생기고. 무려 스무문제중에 한 열다섯개쯤 시도해 본것 같은데 딱 하나 완등했던가. 선수들과의 실력차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제법 노력한줄 알았는데 아직 초보 벗어나려면 한참 멀었다. 차이나 에이스는 당당히 1등을 차지하며 늠름한 모습을 보였다. 잘 할줄 알긴 했지만 그 집중력은 새삼 놀랍다. 다른 분들도 모두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설렁설렁 하는 내 모습이 민망했다. 대회 전체적으로 작년보다는 진행이 많이 ..
아주 먼 옛날, 인터넷 통신이 요란한 모뎀 접속음으로 시작되던 무렵. KOEI 사의 삼국지 시리즈부터 신장의 야망, 대항해시대 로 수많은 날들을 지새우던 그 시절. 우연히 기숙사 허큘리스 CRT 화면에 bbs 목록이 있었고 깜빡이는 프롬프트를 눌러 어느 bbs에 접속했다가 금세 이건 뭐야 하며 로그아웃과 함께 잊혀져갔다. 하지만 외로웠던 유학시절, 절실하게 대화의 상대가 필요했던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려 학교 리눅스 클러스터에 hanterm 을 깔고 예전의 그 bbs에 접속을 시도했다. 텔넷 키즈. 거기서 나는 내 아이디를 만들어 때로는 채팅도 하고 대개 많은 이들이 남겨놓은 글들을 읽으며 시간 가는줄 몰랐다. 유치한 학교 싸움, 번뜩이는 퀴즈문제, 기다려지는 연재소설이 공존했고, 온갖 군상들의 애환이 있..
올해는 해가 바뀌는 줄도 모르게 지나갔다. 송년회를 여러번에 걸쳐 거하게 치러봐도 해가 바뀌는걸 실감하는 것과는 별개다. 아직도 좀 얼떨떨하지만 이렇게 새해맞이 글이라도 써봐야 시간 가는게 느껴질듯 하다. 나이를 한살 더 먹으니 이제 추운게 질색이다. 오죽하면 이번달엔 산행이 예정에도 없을까. 대신 지름신이 강림하셔 기록적인 카드청구액이 예상된다. 그 중에 압권은 역시 설연휴 끼고 11박 12일의 태국 프라낭 여행. 3월엔 또 내내 프랑스에 있어야 하니 4월이나 가서야 새해 느낌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이 뭘까 생각해보며 인간관계, 업무능력, 은행잔고 등등을 떠올려봤지만 아무래도 시간만한게 있으랴 싶다. 그래서인지 막히는 길에서 운전하는걸 무척 싫어하고 시간약속을 가볍게 여..
한가로운 주말. 지인의 추천으로 간송미술관에 가봤다. 간송미술관은 일년에 봄, 가을 보름씩 두번만 여는 소담스런 미술관. 어릴적에는 이런 곳이 가까이에 있는줄도 모르고 살다 이제서야 찾아보게 되었다. 간송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사군자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단다. 며칠후면 또 반년간 문을 닫는 탓인지 10시 개장시간에 맞춰 왔는데도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 그래도 주위에 온갖 풀과 나무가 휴식을 줘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다. 천천히 옛 사람들의 멋과 기개를 담은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사군자 중 대나무 그림이 가장 많았고 그중 내 시선을 잡아 끈 작품은 역시나 탄은 이정의 풍죽. 바로 옆의 임희지의 풍죽을 보며 봄바람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면 이정의 풍죽 앞에선 거친 바람을 받아내는 강한 생명력이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