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25,26,27. 설악산 심설산행
12월 25,26,27일 설악산 심설산행
12월 25일
오전 10시 30분 백담행 버스에 몸을 싣다. 1시 15분 용대삼거리 도착.
백담황태구이에서 8천원짜리 황태구이+순두부 식사. 밑반찬이 푸짐해서 좋다.
산행전에는 든든하게 먹는게 최고다.
2시 30분 백담탐방안내소 출발.
식사하고 올라가는 길에 구박사님과 우연히 조우. 가족들과 나들이 보기좋다.
3시 40분 백담사통과해서 5시 40분 수렴동대피소 도착.
계곡길에 소담스레 쌓인 눈이 참 좋다. 겨울에 많이 왔던 길이지만 이번은 유난히 각별하다.
동지 지난지 얼마안돼 해가 짧다. 수렴동 도착할 즈음에는 사위가 어둑어둑하다.
수렴동 대피소는 재작년 수해에 떠내려가 다시 지었는데 지난 11월에 공사가 끝났단다.
내부는 3층 침상으로 적정수용인원은 18명. 한겨울인데 더울정도로 난방을 잘해준다.
건물지붕의 태양광발전과 계곡물을 이용한 초수력발전등으로 전력공급을 한단다.
저녁식사로 라면 하나를 끓여먹고 잠을 청하는데 초저녁부터 잠이 올리 만무하다.
계속 음악을 들으며 뒹굴다 자정쯤 밖에 나와보니 별들이 쏟아질듯 눈부시다.
설악에 들었음이 실감난다.
멋진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12월 26일
오늘 여정은 소청쯤까지라서 서둘것 없다. 느즈막히 8시에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간밤에 묵었던 다른분들은 벌써 다들 떠나셨다.
아침식사는 살짝 데운물에 분유를 풀고 시리얼과 건포도 아몬드를 넣고 먹는다.
무엇보다 가벼워서 이렇게 가져왔는데 그럭저럭 든든하다.
아침기온이 -17도인데도 그리 추운줄 모르겠다.
9시에 산장을 나선다.
오랜만에 수렴동계곡을 따라 걷는다. 참 아늑하다.
원래 겨울에 계곡길을 걸으면 적막한데 아직 설악이 그다지 춥지 않았는지 계곡에 물이 시원스레 흐르는 소리가
발걸음을 가볍게한다. 오전내내 볕이 들지 않는 계곡을 따라 걸으니 제법 한기가 느껴진다.
11시에야 비로소 햇볕을 만난다. 따스한 햇살아래 앉아 커피 한잔 곁들여 빵을 한입 베어문다.
12시 30분 된비알을 올라 봉정암 도착.
간만에 다시 찾는 사리탑앞에 한 아저씨가 뭔가 읽고 있다 이내 자리를 뜨니 나 혼자다.
겨울의 산사는 한갓진 맛이 있어 좋다. 피곤한 다리를 잠시 쉬어준다.
가져온 똑딱이는 처음으로 꺼내 주위의 멋진 풍광을 담기 시작한다.
사리탑에서 본 용아장성릉과 서북릉
1시 20분 소청산장 도착.
늘 묵어가는 정겨운 곳이지만 오늘은 그냥 쉬어가는 곳.
이번에는 중청에서 묵었다 아침에 해돋이를 볼까싶다.
그러고보니 대청에서는 한번도 해맞이를 안해봤구나.
소청에 오르니 늘 그렇듯 세찬 바람이 분다. 그래도 낯익은 외설악의 절경이 반갑기만하다.
사리탑 |
소청산장 |
2시 40분 중청대피소 도착.
산행계획을 임박해서 잡아 미처 예약하지 못하고 왔더니 공단아저씨가 퉁명스레 소청산장으로 가란다.
이유있는 퉁명스럼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3시 30분쯤 입실 시작되어 좀 기다리니 어르신이 침상번호를 배정해 주신다.
다행히도 오늘 대피소는 방 1개도 여유있게 쓸 수 있을만큼 한가로운 편이다.
곤한몸을 누이니 이내 잠들어 한 삼십분 넘게 눈을 붙였던 듯 싶다.
일어나 6시에 햇반과 베이컨과 볶은김치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책을 보며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산중의 밤은 길고 길다.
특히 동지 근처일 때는 더하다.
9시 소등이후에 내내 음악을 들었는데 고요한 가운데 듣는 클래식 음악이 좋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1번부터 6번까지 연속으로 다 듣고 다시 베토벤, 리스트, 브람스 등을 들을 정도로
겨울의 밤은 길고 길었다.
12월 27일
예정된 산행 마지막날.
오전 6시도 안됐는데 산사람들은 벌써 부산스레 움직인다.
나는 해돋이 보려면 아직 시간이 멀었기에 억지로 잠을 더 청해보지만 십리만큼 달아난 잠은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게으름을 피우다 일어나 우모복을 챙겨입고 카메라 하나만 챙겨 대청을 향한다.
7시 25분 대청에 도착해 여명을 감상하다 40분쯤 드디어 해돋이. 며칠 빠르지만 새해 소원 몇가지 빌어보고.
종교에 대해서는 부정적 태도를 가진 내가 이런 새해 소원을 비는 행위가 모순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기원은 의지를 낳고 의지는 행동을 낳기에 내게 기원이라는 행위는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해돋이 |
잠을 깨는 설악 |
대피소 돌아와 다시 어제처럼 분유에 시리얼에 건포도와 아몬드를 좀 섞어 아침식사를 마치고 9시에 길을 나선다.
원래 예정했던 공룡능선은 폭설로 길이 없을거란 직원말에 천불동계곡으로 코스를 잡으니 마음은 마냥 느긋하다.
맑은 날씨속에 설악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멀리 북쪽도 훤히 보인다.
희운각까지는 반쯤 걷다 반쯤 미끄럼타며 내려온다. 그래도 예전에 미끄럼타다 엉치뼈 다친 기억에 조심스럽다.
희운각에서 공단직원에게 공룡능선 상황을 문의하니 발자국 하나만 찍혀있던데 안가는게 좋겠다는 얘기.
나는 속으로 얼씨구나 하며 심설산행 차림을 갖추고 무너미고개에서 왼쪽으로 찍힌 발자국을 따라간다.
외설악 전경 |
신선암봉 |
10시 10분 공룡능선 시작.
하나뿐인 발자국은 두개로 나뉘기도 하고 가끔은 뒷쪽으로 나 있기도 하다. 찍힌지 하루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
이 발자국의 주인공 둘이 어디까지 진행하다 돌아왔을까...
길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음이 불안하지만 일단 신선암봉까지 가보기로 하고 출발.
뭉쳐지지 않는 건설이 1미터 이상 쌓여 밟는곳마다 허리까지 푹푹 빠진다.
신선암봉까지 평소의 두배는 힘을 들여 올랐다.
이곳은 여전히 찬 바람이 씽씽불어 대지만 또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살을 에는 바람에도 발걸음을 멈추고 멋진 모습을 담아간다.
신선암봉에서 본 공룡능선과 천화대
신선대까지만 있는게 아닐까 싶었던 발자국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내 아이젠은 어디서 연결 쇠고리 하나가 달아나 반쪽짜리 아이젠이 됐다.
그래도 끝이 어디인가 호기심에 발걸음은 능선을 따라간다.
좀 더 지나 안부에 이르러 러셀한 사람들이 묵었음직한 야영터도 보인다.
능선 절반쯤 진행해 1275봉을 코앞에 두고보니 아마도 돌아서려면 여기서 돌아서야겠지만 마음은 이미 기호지세라.
워낙 폭설이 온 관계로 가파른 사면에서는 앞에 간 사람들도 고생한 흔적이 눈에 띈다.
그 분들은 어찌어찌 올라섰겠지만 눈이 무너져 내가 새로 급사면을 뚫고 올라야 하는 일도 여러번이었고
러셀한 길이 출입금지된 쪽으로 이어져 가파른 바윗길인 공룡옛길로 빠졌다 다시 원래길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걱정이 되는 것은 이 러셀한 팀이 마등령에서 비박을 하고 다른 길이 없는 경우다.
그러면 나는 비선대로 러셀을 해야할까 희운각으로 돌아가야 할까 모르겠다.
설마 발자국이 그대로 미시령방향으로 이어진것은 아니겠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나한봉을 코앞에 두고보니 이제 오히려 담담해진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절경은 나를 계속 이끈다.
공룡능선에서 본 칠형제봉 |
1275봉 |
3시 드디어 마등령 도착. 오세암으로 내려가는 길로는 여럿 오간 발자국이 있고 비선대방향으로는
예의 지금껏 따라온 큰 발자국 하나가 찍혀있다.
오는 내내 생각했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 (둘?)이다.
혹시 내가 따라잡아 만나게되면 비선대에서 막걸리라도 한통 사야겠다 싶다.
발자국은 방금 찍힌듯 선명하게 남아있어 지나간지 얼마 안됐으리라 여겨지지만 그 주인공을 끝내 만나지 못해 아쉬웠다.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을 되돌아보며
비선대로 가는 길은 내려오는 길임에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근 두달을 거의 걷지 않다가 갑자기 장거리 산행을 하다보니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려 쉬엄쉬엄 진행한다.
유선대의 낯익은 모습이 나타나고 장군봉의 익숙한 하산길이 보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위가 어둑어둑해 진 5시 40분 불빛을 따라 비선대 산장에 도착하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공룡능선 시작할때부터 비선대 도착할때까지 9시간 가까이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다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가움도 두배.
산장지기 형님과 오랜만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산채비빔밥 하나를 뚝딱 해치우니 마지막 1시간 더 걸어갈 힘이 난다.
6시 30분. 소공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산책길을 걸으며 설악과 또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7시 25분 소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7시 50분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나니 노곤한 몸에도 정신은 또렷하다.
이렇게 사흘간의 산행은 끝이 났다.
멋진 화이트 크리스마스였고 추억으로 남을 멋진 산행이었다.